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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시리즈 03] 사피엔스의 인류 통합 (ft. 유발 하라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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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시리즈 03] 사피엔스의 인류 통합 (ft. 유발 하라리)

Praiv. 2022. 12. 16.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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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시리즈 목록

[사피엔스 시리즈 00] 호모 사피엔스, 다음은 무엇인가 (ft.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시리즈 01] 사피엔스의 인지혁명 (ft.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시리즈 02] 사피엔스의 농업혁명 (ft.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시리즈 03] 사피엔스의 인류 통합 (ft.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시리즈 04] 사피엔스의 과학혁명 (ft. 유발 하라리)

 

 

 

 

농업혁명 이래로 인간 사회는 점점 더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이를 지탱하기 위한 상상의 구조물들도 더 강력해지고 정교해지기 시작했다.

 

신화와 허구는 ‘문화’라는 인공적 본능을 만들어 내었고

한 개인은 태어날 때부터 죽는 날까지 이 특정한 생활 양식에 길들여지고 준수하도록 요구받으며 살게 되었다.

 

이러한 통합의 큰 축으로 돈, 제국, 종교가 자리하고 있다.

 

#01. 돈

#01.1. 보편적 신뢰

돈은 단연코 인간 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효율적인 상호신뢰 시스템이다.

 

내가 빵을 사 먹을 때 돈을 내고 가져올 수 있는 이유는

빵 판매자가 이 돈으로 다른 물건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내가 돈으로 물건을 살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이 돈을 믿기 때문이고 다른 사람이 돈을 믿는 이유는 내가 돈을 믿기 때문이다.

 

#01.2. 보편적 전환성

돈의 또 한가지 장점은 관용성에 있다.

몇 천년 간 많은 철학자와 사상가, 예언가들이 돈을 모든 악의 근원이라 여겨왔지만 사실 돈만큼 차별없이 사람들을 포용하는 것은 없다.

돈은 자신을 사용하는 사람이 어떤 종교를 가졌든, 어떤 나라에 속했든, 어떤 성적 취향을 가지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서로 알지도 못하고 심지어 서로를 신뢰하지도 못하는 사람들간의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이 두 가지 특성을 돈의 보편적 전환성보편적 신뢰라 정리할 수 있다.

인류 통합의 두 번째 축인 ‘제국’이라는 정치질서는 다음 두 가지의 특징을 가진다.

  1. 제국은 서로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지니고 서로 떨어진 지역에 살고있는 대략 20~30개 정도의 민족은 포용해야 한다.
  2. 제국은 탄력적인 국경과 잠재적으로 무한한 식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1세기 전에는 지구상의 어느 지역이든 대영 제국의 영토가 될 가능성이 있었지만 현재 영국은 국경이 분명하고 국경을 넘기 위해선 자신의 정체성을 훼손해야 하기 때문에 제국이 아니다.

 

#02. 제국

기원전 200년 이래로 인류는 대부분의 시간을 제국 아래서 살아왔고 그 동안 여러 제국이 생겨나고 무너졌다.

많은 제국이 사라졌지만 역사를 통틀어 볼 때 방향성 자체는 전반적으로 통합되어져 가는 분위기이다.

 

21세기 들어 민족주의는 급격히 약화되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특정 국적의 사람 뿐만 아니라 인류 모두가 인권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믿고 있다. 협력망은 갈수록 세계적으로 통합되고 있고 이 질서에 합류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그렇기에 이번에 만들어질 제국은 진정으로 전 세계적인 제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03. 종교

#03.1.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

돈과 제국은 인류의 상상물로 만들어진 체계이기 때문에 불완전하다.

종교는 이러한 취약점을 보완해주는 훌륭한 통합 수단이다. 불완전한 인류 대신 완전하고 초월적인 절대자에 의지한다.

 

따라서 종교는 ‘초인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규범과 가치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다.

 

#03.2. 인본주의

신에 대한 믿음 이외에도 인간성에 대한 믿음도 존재한다.

기독교 분파가 신의 정확한 정의를 두고 다투는 것처럼, 인본주의는 인간성의 정확한 정의를 두고 크게 3가지 분파가 존재한다.

 

‘인간성’이 개별 개인의 속성이며 개인의 자유는 더할 것 없이 신성하다는 관점은 자유주의적 인본주의이다.

이를 통칭하여 ‘인권’이라 부른다.

최근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인간이 침팬지나 다른 여타의 동물들처럼 호르몬, 유전자, 시냅스의 통치를 받는 존재라는 주장이 점점 더 커지면서 자유주의적 인본주의는 위협을 받고 있다.

현재의 법은 이러한 불편한 진실을 애써 외면하지만 과연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인간성’이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집단적이라는 관점은 사회주의적 인본주의다.

이 관점은 특정한 개인의 자유보다 모두의 평등을 우선순위에 둔다.

 

‘인간성’이 진화하거나 퇴화할 수 있다는 관점은 진화론적 인본주의다.

이를 가장 잘 활용한게 국가사회주의, 즉 나치다.

 

 

 

 

발췌 목록..

더보기

역사의 화살

p234)

농업혁명 이래 인간사회는 점점 더 규모가 크고 복잡해졌다. 그동안 그런 사회질서를 지탱하는 상상의 건축물 역시 더욱 정교해졌다. 신화와 허구는 사람들을 거의 출생 직후부터 길들여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특정한 기준에 맞게 처신하며, 특정한 것을 원하고, 특정한 규칙을 준수하도록었다. 그럼으로써 수백만 명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게 해주는 인공적 본능을 창조했다. 이런 인공적 본능의 네트워크가 바로 ‘문화’다.

 

돈의 향기

p258)

사람들이 기꺼이 그런 일을 하려 드는 것은 자신들의 집단적 상상의 산물을 믿기 때문이다. 신뢰는 온갖 유형의 돈을 주조하는 데 쓰이는 원자재다. 앞의 부유한 농부가 재산을 팔고 별보배고둥 껍데기 한 자루를 받아서 다른 지방으로 여행을 갔다고 하자. 그는 그곳의 사람들이 별보배고둥 껍데기를 받고 기꺼이 쌀과 집과 밭을 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따라서 화폐란 상호신뢰 시스템의 일종이지만, 그저 그런 상호신뢰 시스템이 아니라 인간이 고안한 것 중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효율적인 상호신뢰 시스템이다.

이런 신뢰를 창조한 것은 정치, 사회, 경제적 관계의 매우 복잡하고 장기적인 네트워크다. 나는 왜 별보배고둥 껍데기나 금화나 달러화를 신뢰할까? 내 이웃들이 그것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이웃들이 그것을 신뢰하는 이유는 내가 그것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p262-263)

표식의 형태와 크기는 역사를 통틀어 크게 달랐지만, 메시지는 늘 같았다. “나, 위대한 왕 누구누구는 이 금속 원반에 정확히 5그램의 금이 들어 있다는 점을 개인적으로 보증한다. 감히 이 주화를 위조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나의 서명을 위조하는 것이고 이는 내 명성에 오점이 될 것이다. 나는 그런 범죄를 최고로 엄중하게 처벌할 것이다.” 돈을 위조하는 행위가 다른 종류의 사기에 비해 항상 훨씬 더 심각한 범죄로 취급되어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위조는 단순한 사기가 아니다. 주권 침해이고, 왕의 힘과 특권과 왕 개인에 대한 반역 행위이다. 여기 해당하는 법률용어는 ‘왕권 침해’였으며, 그 처벌은 보통 고문과 죽음이었다. 사람들은 왕의 권력과 진실성을 신뢰하는 한 그의 주화도 신뢰했다. 완전한 이방인들도 로마의 데나리우스 주화의 가치에 쉽게 동의할 수 있었는데, 주화에 그 이름과 얼굴이 새겨진 로마 황제의 권력과 진실성을 믿었기 때문이다.

 

p266)

철학자와 사상가와 예언자는 수천 년에 걸쳐 돈을 흉보면서 돈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매도했다.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한편 돈은 인류가 지닌 관용성의 정점이다. 돈은 언어나 국법, 문화코드, 종교 신앙, 사회적 관습보다 더욱 마음이 열려 있다. 인간이 창조한 신뢰 시스템 중 유일하게 거의 모든 문화적 간극을 메울 수 있다. 종교나 사회적 성별, 인종, 연령, 성적 지향을 근거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유일한 신뢰 시스템이기도 하다. 돈 덕분에 서로 알지도 못하고 심지어 신뢰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효율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

 

p267)

돈은 두 가지 보편적 원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1. 보편적 전환성. 돈이 있으면 당신은 마치 연금술사처럼 땅을 충성심으로, 사법을 건강으로, 폭력을 지식으로 변환할 수 있다.
  2. 보편적 신뢰. 돈을 매개로 삼으면 임의의 두 사람은 어떤 프로젝트에도 협력할 수 있다.

이런 원리 덕분에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무역과 산업에서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해롭지 않아 보이는 이 원리에도 어두운 면이 존재한다. 모든 것이 변환 가능할 때, 그리고 신뢰의 기반이 익명의 동전과 별보배고둥일 때, 돈은 지역 전통, 친밀한 관계, 인간의 가치를 부식시키고 이를 수요와 공급의 냉정한 법칙으로 대체한다.

 

제국의 비전

p273)

제국이란 정치질서는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을 지닌다.

첫째, 그런 명칭으로 불리려면 서로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지니고 서로 떨어진 지역에 살고 있는 상당히 많은 숫자의 서로 다른 민족이나 국민을 지배해야 한다. 정확히 얼마나 많아야 할까? 둘이나 셋으로는 충분치 않다. 20이나 30이면 충분히 많다. 제국이라 불리기 위한 조건은 그 중간 어디쯤에 있다.

둘쨰, 제국의 특징은 탄력적인 국경과 잠재적으로 무한한 식욕이다. 제국은 자신의 기본구조와 정체성을 변화시키지 않은 채 갈수록 더 많은 국가와 영토를 집어삼키고 소화할 수 있다. 오늘날 영국은 국경이 분명하며, 스스로의 기본구조와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고는 국경을 넘어설 수 없다. 1세기 전에는 지구상의 거의 어떤 지역이라도 대영제국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 문화의 다양성과 영토의 탄력성은 제국의 독특한 특징일 뿐 아니라 역사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p284)

자유주의와 자유무역이라는 쌍둥이 복음을 퍼뜨리겠다는 영국의 사명에는 해가 지는 일이 없었다. 소련은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프롤레타리아의 유토피아적 독재로 향하는 불굴의 역사적 행진을 촉진해야 한다는 의무에 스스로 매여 있었다. 오늘날 많은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정부에게는 제3세계에 민주주의와 인권의 혜택을 가져다줄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좋은 것들을 순항 미사일과 F16 전투기로 배달해야 하더라도.

 

p295-296)

기원전 200년경 이래로 인간은 대부분 제국에 속해 살았다. 미래에도 대부분 하나의 제국 안에서 살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번 제국은 진정으로 세계적일 것이다. 전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이라는 환상이 실현될지 모른다.

21세기가 전개되면서 민족주의는 급속하게 입지를 잃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특정 국적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 인류의 구성원 모두가 정치권력의 합법적인 근원이며, 인권을 보호하고 인간 종 전체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정치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만일 그렇다면, 2백 개에 가까운 독립국가는 도움이 아닌 방해가 될 것이다. 스웨덴인, 인도네시아인, 나이지리아인이 똑같은 인권을 가질 자격이 있다면 단일 세계정부가 이들을 지키는 것이 더욱 간단하지 않겠는가?…

오늘날 세계는 여전히 정치적으로 조각나 있지만, 국가들은 빠른 속도로 독립성을 잃고 있따. 어느 국가도 독자적인 경제정책을 실행하거나 마음대로 전쟁을 선포하고 수행할 실질적 능력이 없다…

우리 눈앞에서 형성되고 있는 지구제국은 특정 국가나 인종 집단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옛 로마 제국과 비슷하게 이 제국은 다인종 엘리트가 통치하며, 공통의 문화와 이익에 의해 지탱된다. 전 세계에 걸쳐 점점 더 많은 기업가, 엔지니어, 학자, 법률가, 경영인이 이 제국에 동참하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 이들은 제국의 부름에 응답할 것인가, 아니면 자기 국가와 민족에 충성을 바치며 남아 있을 것인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제국을 선택하고 있다.

 

종교의 법칙

p298)

오늘날 종교는 흔히 차별과 의견충돌과 분열의 근원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실상 종교는 돈과 제국 다음으로 강력하게 인류를 통일시키는 매개체다. 모든 사회 질서와 위계는 상상의 산물이기 때문에 모두 취약하게 마련이다. 사회가 크면 클수록 더욱 그렇다. 종교가 역사에서 맡은 핵심적 역할은 늘 이처럼 취약한 구조에 초월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있었다. 종교는 우리의 법은 인간의 변덕의 결과가 아니라 절대적인 최고 권위자가 정해놓은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러면 최소한 몇몇 근본적인 법만큼은 도전받지 않을 수 있었으므로, 사회의 안정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따라서 종교는 ‘초인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규범과 가치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p320-321)

고타마는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만일 즐거운 일이나 불쾌한 일을 경험했을 때 마음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다면, 거기에는 고통이 없다. 당신이 슬픔을 경험하되 그것이 사라지기를 원하는 집착을 품지 않는다면, 당신은 계속 슬픔을 느끼겠지만 그로부터 고통을 당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슬픔 속에 풍요로움이 있을 수 있다. 당신이 기쁨을 느끼되 그것이 계속 유지되며 더 커지기를 집착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고 계속 기쁨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모든 것을 집착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고타마는 집착 없이 실체를 있는 그대로 느끼게끔 훈련하는 일련의 명상기법을 개발했다. 이 방법은 우리 마음이 “지금과 다른 어떤 경험을 하고 싶은가?”보다 “지금 나는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온 관심을 쏟도록 훈련시킨다. 이 같은 마음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고타마는 이런 명상기법을 일련의 윤리적 규칙들 위에 구축했는데, 그 규칙들은 우리가 집착이나 환상에 빠지지 않으면서 실제 경험에 초점을 맞추기 쉽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는 추종자들에게 살생, 음행, 도둑질을 피하라고 했는데, 이런 행동은 반드시 집착(권력과 감각적 기쁨, 그리고 부에 대한)의 불을 지피기 때문이었다. 불이 완전히 꺼지면 집착은 완벽한 만족과 평온의 상태와 자리를 바꾸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열반이다(열반은 문자 그대로 ‘불 끄기’란 뜻이다). 열반에 이른 사람은 모든 고통에서 해방된다. 이들은 실재를 극도로 분명하게 경험하며, 환상이나 망상에서 자유롭다. 이들도 분명 불쾌함이나 고통에 맞닥뜨릴 테지만, 그런 경험은 이제 아무런 정신적 고통을 일으키지 않는다. 집착이 없는 사람은 고통받지 않는다.

불교 전통에 따르면 고타마는 그 자신이 열반에 들었으며 고통으로부터 완덩한 자유를 얻었다. 그는 ‘부처’로 알려졌다. ‘깨달은자’라는 뜻이다. 부처는 모든 사람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여생을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발견을 전하는 데 바쳤다. 그는 자신의 가르침을 한 가지 법칙으로 요약했다. 번뇌는 집착에서 일어난다는 것, 번뇌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데 있다는 것,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실재를 있는 그대로 경험하도록 마음을 훈련시키는 데 있다는 것이었다.

 

p327)

모든 인본주의자는 인간성을 숭배하지만 그에 대한 정의는 각기 다르다. 기독교의 경쟁 분파들이 신의 정확한 정의를 두고 다투는 것처럼, 인본주의는 ‘인간성(Humanity)’의 정확한 정의를 두고 다투는 세 개의 경쟁 분파로 나뉘었다. 오늘날 가장 중요한 인본주의 분파는 자유주의적 인본주의다. 이 사상은 ‘인간성’은 개별 인간의 속성이며 개인의 자유는 더할 나위 없이 신성하다고 믿는다…

자유주의적 인본주의의 주된 계명들은 이런 내면의 목소리가 지닌 자유를 침입이나 손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계명들을 통칭하여 ‘인권’이라고 부른다.

 

p328-329)

또 다른 중요한 분파는 사회주의적 인본주의다. 사회주의자들은 ‘인간성’이 개인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집단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이들이 신성하게 보는 것은 개별 인간의 내면의 목소리가 아니라 전체 호모 사피엔스 종이다. 자유주의적 인본주의가 개개인의 최대한의 자유를 추구하는 데 반해, 사회주의적 인본주의는 모든 인간의 평등을 추구한다.

 

p329)

전통적 일신론의 속박에서 벗어난 유일한 인본주의는 진화론적 인본주의로, 가장 유명한 예는 국가사회주의, 즉 나치다. 나치가 다른 인본주의 분파와 구별되는 점은 ‘인간성’에 대해 진화론에 깊이 감화된 좀 색다른 정의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나치는 다른 인본주의자들과 달리 인류를 보편적이고 영원한 무엇이 아니라 진화하거나 퇴화할 수 있는, 변하기 쉬운 종으로 보았다. 인간은 초인으로 진화할 수도, 인간 이하로 퇴화할 수도 있었다.

 

p334-335)

자유주의적 인본주의 신조와 생명과학의 최근 발견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이 간극을 그다지 오래 무시하고 있을 순 없을 것이다. 우리의 자유주의적 정치/사법 제도는 모든 개인이 신성한 내적 본성을 지니고 있으며, 더 나누거나 바꿀 수 없는 이 본성이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모든 윤리적, 정치적 권위의 근원이 된다는 믿음에 기반하고 있다. 이것은 모든 개인의 내면에 자유롭고 영원한 영혼이 거한다는 전통 기독교 신앙의 환생이다. 하지만 지난 2백 년에 걸쳐 생명과학은 이런 믿음을 철저히 약화시켰다. 인간이라는 유기체의 내적 작동방식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거기서 아무런 영혼도 발견하지 못했다. 인간의 행동은 자유의지가 아니라 호르몬, 유전자, 시냅스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을 펴는 과학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 침팬지, 늑대, 개미의 행동을 결정하는 바로 그 힘 말이다. 우리의 사법 정치체계는 그런 불편한 발견을 대체로 카펫 밑에 쓸어 넣어 숨겨두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우리는 생물학을 법학과 정치학으로부터 구분하는 벽을 과연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성공의 비결

p345-346)

사회과학에서도 게임이론의 비호 아래 비슷한 주장이 흔히 이야기된다. 게임이론은 다수가 참여하는 게임에서 어떻게 모두에게 해가 되는 시각과 행동 패턴이 뿌리를 내리고 퍼져나가는지를 설명해준다. 유명한 예가 군비 경쟁이다. 군비 경쟁은 참여하는 모든 당사국들을 파산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군사력의 균형을 실제로 바꾸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파키스탄이 첨단 항공기를 구입하면, 인도가 동일한 조치로 대응한다. 인도가 핵폭탄을 개발하면, 파키스탄도 그대로 따라한다. 파키스탄이 해군력을 확장하면, 인도가 그에 대응한다. 이 과정의 끝에 다다르면, 힘의 균형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동안 교육과 의료에 투자할 수 있었을 수십억 달러가 무기의 구입과 개발에 사용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군비 경쟁의 역학은 저항하기 힘들다. ‘군비 경쟁’은 하나의 행동 패턴으로서,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가며 모두에게 해를 끼친다. 하지만 스스로에게는 이롭다. 생존과 번식이라는 진화적 기준에서 보면 그렇다(군비 경쟁은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자각이 없다는 점을 기억해두라. 그것이 의식적으로 생존과 번식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강력한 역학의 의도치 않은 결과로 그것이 전파되는 것뿐이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이름 붙이든 - 게임이론, 포스트모더니즘, 밈연구 - 역사의 역학은 인간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상 가장 성공한 문화가 반드시 호모 사피엔스에게 가장 좋은 문화라는 생각은 근거가 없다. 진화와 마찬가지로 역사는 개별 유기체의 행복에 무관심하다. 그리고 개별 인간은 너무나 무지하고 약해서, 대개는 역사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도록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사피엔스 시리즈 목록

[사피엔스 시리즈 00] 호모 사피엔스, 다음은 무엇인가 (ft.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시리즈 01] 사피엔스의 인지혁명 (ft.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시리즈 02] 사피엔스의 농업혁명 (ft.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시리즈 03] 사피엔스의 인류 통합 (ft.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시리즈 04] 사피엔스의 과학혁명 (ft. 유발 하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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