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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누군가에 대한 친절은 어디서 올까? (타인의 친절 - 마이클 맥컬러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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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누군가에 대한 친절은 어디서 올까? (타인의 친절 - 마이클 맥컬러프)

Praiv. 2022. 1. 2.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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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한국전쟁 직후 최빈국의 상태에서 최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인정한 선진국으로 성장하였다.한국의 눈부신 성장은 한국인들의 근검절약, 한강의 기적, 경제개발계획 등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폐허가 된 땅에 도움을 준 세계 다른 나라들의 지원도 큰 힘이 되었다. 이를테면 1950년대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받은 원조는 약 17억 달러로 당시 정부 예산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였다.

 

2022년 새해를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 대한민국은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되어있고 그 위상이 높아져가고 있다. 언뜻 보면 당연하게 여겨지면서도 사실 전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바로 국제 원조다. 왜 미국은 전쟁으로 인해 석기 시대로 돌아간 대한민국에게 도움을 주었을까? 그 당시 한국의 상황은 맥아더 장군이 말한 것처럼 ‘다시 일어나려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100년은 걸릴’ 나라였기에 보답을 바라긴 쉽지 않았다.

 

책 ‘타인의 친절’은 인류가 왜 전혀 알지도 못하는 타인의 행복에 관심을 기울이고 친절을 베풀게 되었는지에 관한 책이다.

 

인간은 진화론의 관점에서 매우 이기적인 존재이다. 자기 자신의 번영과 번식, 나아가 혈연 관계가 있는 자식 및 친척들을 돌보게 끔 설계되어있지만 자신과 전혀 관련이 없는 비혈연 관계인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진 않는다. 애덤 스미스는 이를 간단한 예시로 설명했다.

 

갑자기 거대한 지진이 일어나 대제국 중국과 그 엄청나게 많은 인구를 몽땅 집어삼켰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중국과 아무 연관이 없는 유럽의 한 ‘인류애에 불타는’ 남자가 이 대재앙 소식을 접하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생각해보자. 그는 아마 무엇보다 먼저 불행한 국민들의 불운에 대해 아주 큰 슬픔을 표한 뒤, 인간의 삶이 얼마나 예측 불가능하며 인간의 모든 노력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에 대해 이런저런 많은 우울한 생각을 할 것이다. 그렇게 모든 철학적인 생각을 끝내고, 이 모든 인도적 감정을 제대로 표출하고 나면, 그는 아마 자신이 하던 일이나 좋아하는 일로 되돌아갈 것이며, 아니면 휴식을 취하거나 기분 전환을 할 것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예전처럼 다시 평온한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자신에게 아주 하찮은 재난이라도 닥치면, 그야말로 일대 소동이 일고 상황이 훨씬 더 심각해질 것이다. 예를 들어 내일 새끼 손가락을 잃게 된다면, 그는 아마 오늘밤 잠도 못 잘 것이다. 그러나 자기 눈으로 직접 목격한 게 아니라면, 수억 명이 죽어 나가도 별일 없다는 듯 코를 골며 잘 것이다. 그러니까 수많은 사람의 죽음이 자기 자신의 사소한 불운만큼 관심있는 일은 못 되는 것이다.

 

우리는 대개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의 죽음보다 내일 다칠 새끼 손가락이 더 현실적이고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시대의 우리는 이름 모를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거나 기부 등을 통해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 지금부터는 인류 역사가 진행되어 오면서 타인에 대한 친절, 즉 '너그러움'이 어떻게 확장되었는지에 대해 7개의 시기로 얘기해본다.

 

1. 고아들의 시대

 

수렵채집사회에서 농경 사회로 변하면서 인류는 공동체 중심에서 가족 중심으로 협력의 방식이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함께 사냥을 나가는 대신 가족 단위의 농경과 땅 소유를 하게 된 것이다. 자연스레 공동체 전체를 위한 이익보다는 가족을 위한 이익이 더 중시되었고 땅이 적거나 집안의 가장이 일찍 죽는 등 불행을 겪은 가정은 그렇지 않은 가정에 비해 삶의 여건이 훨씬 더 악화되었다. 빈부 격차는 수렵채집사회보다 훨씬 심해졌고 거리 곳곳에는 고아와 과부가 넘쳐났다.

당대의 왕들은 최빈층에 속한 고아를 도와 줌으로써 너그러움을 나타내었다. 왕들이 이런 너그러움을 보여준 건 여러 가지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극빈층들을 돌보아 준다는 선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고, 이들이 왕에게 보내는 충성심을 얻을 수 있으며, 빈익빈 부익부가 심해지면서 엘리트 계층의 힘이 세지는 것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다. 돌봄은 엘리트 계층이 극빈층을 착취하며 얻는 이익을 일정 부분 빼앗아 극빈층에게 되돌려줄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2. 연민의 시대

 

기원전 800년부터 200년 사이는 근본적인 문화적 변화의 시기이다. 역사학자들이 ‘축의 시대’라고 말하는 이 시기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의 개념이 나타난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현재에도 많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각종 종교들이 등장한 시기인데 이 종교들은 모두 가난한 자들에게 연민을 느끼도록 가르쳤다. 종교와 더불어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이 등장한 시기이기도 하다.

 

 

3. 예방의 시대

 

지금까지의 시기가 발생한 가난에 대한 후속조치였다면, 이제 인류는 가난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가난의 확률을 줄이고자 하였다. 스페인 인문주의자인 후안 루이스 비베스는 <빈민 원조에 대하여>란 보고서에서 브뤼헤 시가 도와주어야 할 사람을 추려내는 데 필요한 광범위한 계획, 그 도움을 할당하는 합리적 접근 방식, 그 모든 것에 필요한 경비를 마련하기 위한 방법 등을 제시했다. 비베스의 주장에 따르면 정부는 돈을 둘러싼 논란의 해소나 범죄자들의 처벌에만 관심이 있는데, 그건 그들이 정부가 해야 할 일에 대해 개념이 없기 때문이었다. 사실 치안 판사들 입장에서는 악인을 처벌하고 제하는 일보다는 선량한 시민을 만들어내는 일에 전력투구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이 모든 문제를 미리 잘 조치한다면 처벌해야 할 사람의 수가 훨씬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도 엘리자베스구빈법을 통해 단순히 가난한 자들에게 물자를 지원하는 것을 넘어 일거리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방향의 정책을 피게 되었다.

 

 

4. 1차 가난 계몽주의 시대

 

이 시기 문헌을 찾아보면 ‘가난(poverty)’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오는데 이는 유럽과 북미 지역에서 가난 문제와 관련해 서서히 형성된 두 가지 중요한 사상을 언급하고 가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얘기를 하기 위함이었다.

 

첫번째 중요 사상인 ‘분배적 정의’는 모든 인간은 필요한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자원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믿음에 근거를 둔 도덕적 이상이었다. 이는 곧 사유재산을 소유할 권리와 삶을 유지할 권리 사이에서 어떻게 적절한 균형을 취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되었다.

 

두번째 중요 사상인 ‘과학적인 사고방식’은 가난한 사람의 삶이 지금보다 훨씬 더 개선될 수 있다는 사상이었다. 정책을 기획할 때 단순한 사고 실험에 그치지 않고 통계적 수치 등 현실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책을 수립하고자 한 것이다.

 

 

5. 인도주의 빅뱅의 시대

 

서두에서 말한 국제 원조의 기본 모델이 나온 시기이다. 1755년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에 진도 8.5의 강진이 발생하였고 수천 채의 주택과 건물이 불에 타는 재앙이 발생하였다. 이후 대양저에서 솟구쳐 오른 높이 18미터가 넘는 삼각 해일이 리스본을 덮쳤다. 약 4만 명의 리스본 주민이 죽었고 80%가 넘는 시내 건물이 파손되거나 무너졌다.

 

포르투갈의 재앙을 본 영국, 스페인, 프랑스 등의 나라는 물자 지원과 복구를 위한 노력을 제공하였다. 국제 원조가 없던 당시에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 배경에는 같은 집안에 대한 사랑, 외국 땅에 있는 자국 국민과 재산에 대한 우려, 돈으로 우정과 환심을 사려는 노력 등, 뻔히 알 수 있는 각국의 다양한 이해타산이 숨어 있었고, 포르투갈의 이웃들은 그 때문에 리스본 대재앙에 관심을 보였다.

 

이같은 이유에도 불구하고 리스본 대재앙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은 당시 시대가 군사 및 정치적 연합, 상업적인 상호 관심사, 여행 및 통신의 발달 등으로 인해 유럽 국가들은 상호의존적이 되었고, 그래서 리스본 지진은 유럽 국가들의 집단적인 동정심을 불러일으켰다.

 

 

6. 2차 가난 계몽주의 시대

 

1차 가난 계몽주의 시대에 ‘가난(poverty)’에 대한 언급이 늘어났던 것처럼, 이 시기에도 이에 대한 언급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1,2차 세계대전을 지나 세계는 신냉전시대로 접어들었고 미국 대통령인 해리 트루먼 입장에서 가장 큰 적은 공산주의였다. 그리고 이 공산주의가 가장 위세를 떨치기 좋은 곳은 가장 가난한 나라들일 것이라 생각했다. 1950년에 미국 의회는 4단계 프로그램으로 알려진 프로그램을 승인하는데, 그 프로그램은 각종 기술적 지식과 능력을 세계의 개발도상국과 공유함으로써 세계적인 빈곤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이후 10여 년간 미국은 그 프로그램에 따라 수백만 달러를 많은 개발도상국, 특히 공산주의의 위협이 가장 커 보인 동남아  지역에 제공했다. 공산주의화되기 쉬운 아프리카와 남미 국가도 그 프로그램에 따라 지원을 받았다.

 

 

7. 충격의 시대

 

인간의 너그러움과 관련된 이전 6개 기간들과는 달리, 충격의 시대는 대규모 고통에 대한 어떤 특정한 역사적 경험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어떤 특정한 형태의 고통에 대한 반응에서 생겨난 것도 아니다. 충격의 시대는 경제적 불평등이나 노숙, 질병, 장애, 실업, 유아 사망률, 자연 재해, 전쟁의 희생, 개발도상국의 가난 또는 공장식 축산 같은 어떤 특정 문제에 대한 반응에서 생겨난 게 아니다. 그보다는 모든 형태의 고통에 대한 반응에서 생겨났다. 절충과 유한한 자원이 특징인 세계에서 우리는 어디를 후원하고 어디를 보류할지에 대한 결정을 해야하기 때문에 생겨난 시기이다.

 

충격의 시대에는 사람들이 사실과 결과에 집착하며, 그 결과로 조성된 기술적,도덕적 생태계를 통해 다섯 종의 새로운 기부자가 나타나는데 ‘효율적 이타주의자’, 빌게이츠와 같은 ‘자선 자본주의자’, 가난에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가난 과학자’, ‘효율성 전문가’, 집 안에서 기부를 요청하고 지원하는 ‘목욕 가운 인도주의자’가 바로 그들이다.

 



 

역사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공동체 중심의 사회에서 가족 중심의 사회로, 현대에 이르러서는 개인 중심의 사회인 ‘나노사회’로 삶의 방식이 바뀌어가고 있다. 이 관점에서만 보면 이기적인 인간들에게 타협이란 역사적 흐름에 반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류는 역사를 거쳐오면서 점점 더 너그러움의 범위를 넓혀왔다. 책에서는 너그러움이 크게 3 가지에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첫째는 누군가를 도와주면 나도 언젠가 도움을 받을 거라는 호혜주의, 둘째는 내가 누군가를 돕는 행위를 제 3자가 보고 나를 선한 이미지로 인식하길 바라는 본능, 세번째는 초연결 사회 속 타인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다는 이성적인 노력이다.

 

나노 사회를 향해가는 2022년, 우리 또한 단순히 파편화된 행복 말고 타인에 대한 친절이 주는 행복을 가꾸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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